logo

한국어

양양군 관광

낙산사

2015.11.30 20:17

노마드 조회 수:724

일주문

낙산사의 정문인 일주문이 있는데 이 일주문에 걸려있는 편액에는 "오봉산 낙산사"(五峰山 洛山寺)라 쓰여 있다.[오봉산은 낙산의 다른 이름이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55

yn15001.jpg

낙산사 소개

강원도 양양(襄陽)의 해변가 오봉산(五峰山),그곳에 낙사사가 있다.이 절에는 아늑한 토담 속에 법당이 있고,동해를 굽어보는 해수관음의 포근한 미소가 있다.그리고 의상대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볼 수도 있고 홍련암에 앉아 관음굴에서 울리는 파도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낙산사는 산라의 고승 의상(義相)이 창건했다.중국 당나라의 지엄(智儼)문하에서 화엄교학(華儼敎學)을 공부한 의상이 신라로 돌아온 해는 문무왕10(670)이었다.그후 어느 해에 의상은 낙산의 관음굴(觀音屈)을 찾았다.그는 지심으로 기도하여 관음보살을 친견했고,그리고는 낙산사를 창건했다.

yn15002.jpg

홍예문

yn15004.jpg


(2005 4월 화재로 석축만 남고 소실된후 다시 복원되었다.)

홍예문은 위는 누각이고  그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이룬다.홍예문은 1467(세조13)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그 위의 누각은 1963 10월에 지은 것이다.

축조 방식은 먼저 문의 기단부에 거칠게 다듬은 2단의 큼직한 자연석을 놓고

그 위에 화강석으로 된 방형의 선단석 3개를 앞 뒤 두 줄로 쌓아 둥근 문을 만들었다.선단석은 홍예문 등에 사용되는 맨 밑을 괘는 모난 돌을 가리킨다.

문 좌우에는 큰 돌로 홍예문 위까지 성벽과 같은 벽을 쌓아 사찰 경내와 밖을 구분했다.

이홍예문에는 장방형으로 26개의 화강석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당시 강원도에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에서 석재 하나씩을 내어 쌓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혹은 사용된 돌은 강현면 정암리 길가의 것을 가져다 쌓은 것이라고도 전한다

낙산배와 시조목

yn15014.jpg

낙산 배는 조선성종(1469~1494)때에 주요 과수로 지정된 재래종 품종이 낙산사 주변에 재배되어 상품은 나라에 진상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지금도 낙산배는 낙산사 사찰 내의 과수원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낙산사 정문에서 홍예문으로 들어가면 우측에 낙산 배 유래에 관한 유래비와 시조목이 있다.

사천왕 문

yn15005.jpg

종 각

yn15006.jpg


yn15007.jpg


원통 보전

yn15008.jpg


칠층석탑

yn15012.jpg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탑으로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낙산사는 조선 세조 대(재위,1455~1468)에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양식을 살펴보면 평면은 방형(方形)으로서 기단 석 위에 탑신이 놓이고 그 위에 상륜 부가 마견된 구조를 하고 있다


원 장

yn15010.jpg


원통보전 주위에는 그 둘레를 네모 낳게 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담장인 원장(垣墻)이 있다. 축조된 시기는 세조가 절을 중건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이 원장은 법당을 둘러싼 성역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아울러 겸비하고 있다.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우리 나라의 대표적 담장이며,현재 강원도 유영 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담장 안쪽의 담벽은 기와로 쌓고 담장 바깥쪽은 막돌로 쌓았다.법당을 향한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석 기단을 조성하고,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다.담벽은 강회 진흙과 평와(平瓦)를 차례로 다져 쌓아 담벽 앞면에 기와로 가로 세로의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 둥근 화강암을 고르게 쌓고 돌과 돌 사이는 강화진흙으로 메웠다.담장 위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담벽을 보호하고 있다.

본래 터만 남아 있었으나 근래에 전체적으로 보수하면서 연결했다.크기는 전체 길이 220m,높이3.7m이다.


해수관음상

yn15011.jpg


낙산사 성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이 해수 관음상(海水觀音像)이다. 그래서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해에 왔다가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코스가 되어 있을 정도다.

1972년 처음 착공되어 5년 만인 1977 11 6일 점안했다.크기는 높이16m, 둘레3.3m,최대 너비6m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양 옆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관음상은 대좌 위에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는데,왼손으로 감로수병(甘露水甁)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께에서 들어 수인(手印)을 짓고 있다.이 해수 관음 상은 우리 나라에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700여 톤을 운반해와 조성한 것이다.

의상대

yn15013.jpg


의상대(義湘臺)는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의 좌선 수행처라고 전한다.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다.

 창건 이후 언제인가 이 곳에 암자를 지었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천 여 년전이라고 한다.그러나 문헌 등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고, 다만 용암 체조(龍巖 體照,1714~1779)스님이 지은 등낙가의상대(登洛伽義湘臺)라는 시문이 전하고 있어 연혁을 참고 할 수 있다.

yn15022.jpg

공중사리탑

yn15016.jpg


해수 관음상 앞에 있는 관음전 옆의 숲속 길로 들어가서 약100미터 가량 내려 가면 솦 속에 공중사리탑이 있다.현재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 공중사리탑은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탑으로서,조선시대 중기 인1692(숙종18)에 석겸(釋謙)스님 등이 대원(大願)을 발하여 세웠다고 전한다.

탑의 양식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유행했던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구조는 지대석 및 하대 석.중대석.상대석으로 구성된 기단부,탑신과 옥개석의 탑신부,그리고 탑신부 위에 놓인 상륜 부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먼저 지반 위에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팔각으로 구성된 기단을 얹었다.하대석은 판각으로서 옆면에 안상을 마련하고 그 안에 태극무늬를 새겼으며,그 윗부분에다 16잎의 복련을 조각했다.중대석은 각 면을 아래 위로 연결된 연주문 으로 구획했으며 그 안에 무늬가 새겨져 있다.상대석은 밑부분을 앙련으로 장식하고 그 위의 옆면에 안상을 새겼다.안상 안에는 범자를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탑신은 둥근 구형인 것이 특색이며, 그 위에 올려진 옥개석은 팍각으로 되어 있다.옥개석의 처마 길이 가짧으며 끝에서 살짝 위로 솟아 반전되었는데, 낙수면에 기와골은 표현되지 않았다.

상륜부는 앙련 복발 보륜 보주를 각각 따로 만들지 않고 한 돌에 큼직하게 조각했다.

보타전 과 보타락

yn15017.jpg


 1993년에 완성된 보타 전 안에는 천수 관음 등 7관음을 봉안했다. 그리고 그 뒤 에 1500관음상이 모셔져 있다.이렇듯 많은 관음상을 조성한 것은 우리 민족의 구제와 해탈을 기원하는 뜻에서라고 한다.

 1500관음상 한분 한분의 천수천안과 32응신상을 곱하면 그 수가 5천만 정도인데 그것은 곧 5천만 우리민족의 인구수와 일치한다.

곧 우리 5천만 민족의 구원과 해탈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관음 상의 재질은 모두 목조로서 백두산에서 자라는 홍송(紅松)이다.

보타 전은 해수 관음 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관음 신앙의 성지요 우리 나라의 대표적 관음 도량임을 상징하는 전각으로서,19917월짓기 시작해서 1993 410일에 완공했다.

규모는 앞면5,옆면3칸 이며 팔작 지붕으로 되어 있다.안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천수 관음.

성관음.십일면관음.여의륜관음.마두관음.준제관음.불공 견색관음. 7관음상과 천오백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앞면 중앙에 천수관음을 비롯해서 좌우로6관음,그리고 뒤쪽으로 천오백관음상이 있다.

천수 관음 상은 입상이며,나머지 6관음은 좌상이다.낙산사 천수관음은 32관음신상으로도불려지는데,그 뒤쪽으로는 목각 후불탱이 조성되었다.보타 전 안에는 그밖에 동종과 금고(金鼓)가 있다

yn15018.jpg


yn15023.jpg


홍련암

yn15024.jpg


낙산사의 산내 암자인 홍련암(紅蓮庵)은 의상대 북쪽300m 지점에 있다. 이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 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 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장소로서, 또한 관음 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석굴 안에서 기도하던 바로 그 장소로서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관음 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의 서울인 경주에서부터 멀리 이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푸른 새를 만났는데,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다. 이윽고 7일후 바다 위에 붉은 연꽃,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 보살이 나타나 의상 대사는 드디어 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푸른 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또다른 창건설화로서는, 의상대사가 관음 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리에 대나무가 솟았는데, 그 곳에 불전을 지으니 곧 홍련암이라고도 전한다


yn15021.jpg


낙산사 유물전시관

yn15019.jpg


국수 공양실

yn15020.jpg

점심 시간 누구나 무료로 국수를 먹을수 있음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공지 양양군 소개 2017.02.25 411
23 송이밸리 자연휴양림 file 2017.09.04 487
22 법수치 계곡 file 2017.08.07 1020
21 어성전계곡 file 2017.08.07 568
20 명주사 file 2017.08.07 180
19 오색 약수 file 2017.01.03 325
18 갈천 약수 file 2017.01.03 291
17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file 2016.12.29 157
16 공수전(용소골)계곡 file 2016.12.27 308
15 둔전계곡 file 2016.12.14 512
14 석교리 유원지 file 2016.12.14 512
13 미천골 휴양림 file 2016.12.12 351
12 매호 file 2016.12.09 125
11 성국사 file 2016.12.01 200
10 망월사 file 2016.12.01 148
9 전통 가옥 2016.12.01 305
8 휴휴암 file 2016.11.30 306
7 현산공원 file 2016.11.16 166
6 영혈사 file 2016.10.24 200
5 동해신묘 file 2016.10.23 133
4 하조대 file 2016.10.21 253
3 선림원지 file 2016.10.20 263
2 진전사지 file 2016.10.20 213
» 낙산사 file 2015.11.30 724